도리얌 님의 블로그

살아가면서 필요한 정보들

  • 2025. 3. 24.

    by. Doriyam

    목차

      우주를 밝힌 위대한 지성들: 조셀린 벨 버넬 (Jocelyn Bell Burnell)

      1. 별의 심장소리를 처음 들은 사람

      우주는 조용한 공간 같지만,
      사실 그 안엔 초당 수백 번의 박동으로 울려 퍼지는 별의 심장소리가 숨어 있다.
      이 신호를 처음 들은 사람은 라디오가 아닌, 인간의 눈이었다.

      조셀린 벨 버넬(1943~ )은 천문학 역사상 최초로 ‘펄사(Pulsar)’를 발견한 인물이다.
      그녀는 별의 죽음에서 나온,
      우주에서 가장 규칙적인 전파 신호를 해석하며
      전파천문학의 새 시대를 열었다.


      2. 망원경을 직접 짓던 대학원생

      1965년, 조셀린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박사과정에 입학한다.
      지도교수는 전파천문학자 앤서니 휴이시(Antony Hewish).
      그들은 퀘이사(quasar)의 전파 변동을 연구하기 위한 새로운 망원경을 건설하고 있었다.

      이 망원경은 오늘날처럼 버튼 하나로 작동하는 기계가 아니었다.
      조셀린과 동료들은 직접 200km 길이의 케이블을 땅에 깔고, 기둥을 박고, 안테나를 설치했다.
      무려 6개월 동안의 육체노동 끝에 망원경이 완성되었다.

      그녀는 이 장비를 통해, 하루 수십 미터에 달하는 전산 출력 종이를 일일이 분석하며
      이상한 전파 신호 하나에 주목하게 된다.


      3. 별에서 온, 초정밀 신호

      그 신호는 마치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이었다.

      • 주기는 정확히 1.33초
      • 강도는 일정
      • 몇 주 동안 같은 위치에서 반복 수신

      처음에는 지구 내 전파 간섭이나 장비 오류로 의심했지만,
      그 어떤 설명으로도 이 신호를 부정할 수 없었다.
      그녀는 이 신호를 ‘작은 녹색 인간(LGM: Little Green Men)’이라 장난스럽게 불렀지만,
      자연적 기원이 있을 것이라 믿고 관측을 이어갔다.

      결국 이 신호는 빠르게 회전하는 중성자별에서 나오는 전파라는 사실이 밝혀진다.
      이것이 인류 최초의 펄사 발견이었다.


      4. 펄사란 무엇인가?

      별은 수명을 다하면 폭발한다.
      태양보다 몇 배 더 무거운 별은 **초신성(supernova)**으로 죽으며,
      그 잔해는 **중성자별(neutron star)**로 수축된다.

      중성자별은 지름 20km 남짓,
      그러나 태양보다 무거운 질량을 가진 초고밀도 천체다.
      이 천체가 빠르게 자전하며 강력한 전자기장을 방출하면
      그 에너지가 빛처럼 전파 형태로 지구까지 도달한다.

      이 전파는 마치 등대처럼 일정한 주기로 깜빡인다.
      이것이 바로 **펄사(Pulsating Radio Source)**이다.

      조셀린은 지구에서 이 등대의 불빛을 처음으로 알아본 사람이었다.


      5. 노벨상 논란과 조용한 품격

      펄사의 발견은 전 세계 과학계를 충격에 빠뜨렸다.
      이후, 조셀린의 지도교수였던 앤서니 휴이시는 1974년
     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. (마틴 라일과 공동 수상)

      하지만 조셀린 벨 버넬의 이름은 수상 명단에 없었다.

      이 일은 지금까지도 과학계의 대표적인 ‘공로 누락’ 사례로 남아 있다.
      그러나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.

      “박사과정 학생이 노벨상을 받는 건 드문 일입니다. 제겐 이미 큰 보상이 주어졌어요 — 저는 발견을 했고, 그게 남았으니까요.”

      그녀는 명예보다 발견의 가치 자체를 더 중시한 과학자였다.


      6. 여성 과학자의 길을 열다

      조셀린은 이후에도 전파천문학과 고에너지 천체물리학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했다.
      그리고 무엇보다, 여성 과학자의 대표 목소리로서
      수많은 후배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.

      • 영국왕립학회 최초의 여성 회장 후보
      • 다양한 과학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
      • 젊은 여성 과학자를 위한 장학기금 설립
      • 성평등과 과학 접근성에 관한 강연 지속

      그녀는 단지 펄사를 발견한 과학자가 아니라,
      과학을 모든 이에게 열어주려 한 사람이었다.


      7. 천문학에 남긴 유산

      조셀린 벨 버넬이 발견한 펄사는 이후 천문학에서 엄청난 역할을 한다.

      • 중성자별 연구의 핵심 자료
      • 일정한 주기를 이용한 우주 시계
      • 중력파 연구에서 기준 신호로 활용
      • 블랙홀 탐색, 퀘이사 분석에 응용
      • 우주망(Cosmic web) 구조 이해에 기여

      그녀가 처음 포착한 전파는
      오늘날 수천 개의 펄사 발견으로 이어졌고,
      그 하나하나가 우주 진화의 퍼즐 조각이 되었다.


      8. 결론: 등대의 불빛을 따라간 사람

      조셀린 벨 버넬은 우주의 어둠 속에서
      별의 심장박동을 읽어낸 사람이었다.
      그녀는 불완전한 장비, 편견, 차별 속에서도
      **과학의 본질인 ‘관찰과 의심, 그리고 끈기’**로 진실에 도달했다.

      그녀가 발견한 전파는 단지 신호가 아니었다.
      그것은 우주가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,
      그리고 그것을 들으려는 인간의 귀였다.

      그녀가 수상하지 못한 노벨상보다 더 빛나는 것은,
      지금도 우주 어딘가에서 펄스처럼 반짝이고 있는 과학의 불빛이다.